카테고리 없음2013. 11. 28. 21:16

 A new culture of learning : cultivating the imagination for a world of constant change     더글라스 토머스, 존 실리 브라운 / 송형호, 손지선 / 라이팅하우스 / 2011→2013 / 196p

 

 

 교육현장 전문가와 지식경영의 전문가가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놀이하듯 공부하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보고한다. 가르치기에서 배우기로 초점을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공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공부를 더 이상 일방적인 정보 흡수의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적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변화가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정규교육을 마쳤다고 해서 공부를 멈출 수는 없다. 오늘날 학습 공동체는 평생에 걸쳐 삶의 일부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 체계는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질문하는 구조로 세워져 있다. 이는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꺾고 공부를 피곤한 짐으로 만들어 버렸다. 반대로 공부를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부터 질문하는 것으로 전환해서 놀이와 같은 즐거운 사회적 경험으로 재구조화할 수 있다.

 더글라스 토머스.  서던캘리포니아大 저널리즘 부교수. 저서『해커 컬처』『기술의 미래』『사이버 범죄』.
 존 실리 브라운.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 소장. 서던캘리포니아大 교환교수. 저서『지식사회의 미래』『비트에서 인간으로』『스토리 이코노미』등.
 송형호.  한국외대 영어과. 면목高 교사. 저서『손쉽게 시작하는 ICT 활용교육』.역서『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손지선.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 창동中 교사.

 

 한국어판 서문

 아인슈타인은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적어두면 찾을 수 있는 걸 왜 기억하느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고 한다.

 디지털 기술은 잘 잊기 위한 도구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색해서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도구이다.  기억력이 아니라, 판단력이 중요하다.

 21세기에는 배우는 것이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하고, 질문하는 능력이 암기력보다 더 가치있다.

 한국은 극도로 표준화된 평가에 바탕을 둔 엄격한 교육체계로 유명하다.

 상상의 가치보다 기계적 학습만을 강요하는 학교교육 체계로는 결코 창의력을 배양할 수 없다.


 1장. 평생 공부
 놀이(게임)란 게임의 규칙과 행동의 자유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는 상태다.

 놀이가 학습 매개체 안에서 일어날 때 새로운 정보와 참신한 발상 그리고 열정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놀이, 질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상상력은 학습의 핵심에 위치한다.

 세상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이해에 도달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질문을 통해 상상력이 꽃핀다. 이럴 때 즐거움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질문과 놀이의 원칙은 평생학습을 정의 내려 주며 오늘날의 공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2장. 두 문화의 이야기
 20세기 내내 교육체계는 교수행위가 학습이 일어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가정 하에 세워졌다.

 이에 따라 교육은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서 학생으로 전해지는 정보의 일방향적 전달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전통적 교수모형으로는 더 이상 21세기의 빠른 변화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새로운 학습모형으로 생각을 전환할 때가 왔다.

 교수 중심 접근에서 표준화는 최대한 많이, 빨리 배우는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며 시험은 측정하기 위한 타당한 방법이다.

 교수모형에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과에 따라서만 그 가치가 평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특정한 사람들이 어떤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은 보통 반대로 일어난다. 개인이 새로운 문화의 일부가 될 때 변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의 한 부분이 된 개개인들이다.

 외국에 막 도착한 교환학생은 새로운 문화권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여 통합되든지 혹은 떠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전통적인 문화 개념은 안정성을 추구하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변화에 적응하는데 반해, 새로운 개념의 문화는 주변환경에 유기적으로 반응한다.

 단순한 적응을 넘어서 변화 속에서 더 잘 성숙한다. 변화를 환경적 요소로 인식하고 통합시키고 추가적인 변화까지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공부 문화에 존재하는 문화의 유형이다. 이미 하고 있는 일에 적응하고 있다는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단지 반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문화 속에서 능동적으로 무언가 만들어 낸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좀더 이해가 된다.

 교수 중심 접근에서는 문화는 곧 환경이지만, 학습 중심 접근에서 문화는 환경 속에서 출현하고 환경과 더불어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공부 문화 환경 속에서 교실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정보와 놀이에 대한 풍부한 자원에 접근 가능한 학습환경으로 대체된다.

 

 3장. 변화의 수용
 유사 이래 변화는 늘 철학적 명상의 한 주제가 되어 왔다.

 "어떤 사람도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그 강이 같은 강이 아니며 그 사람 역시 똑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헤라클리투스.

 물에서 나와 다시 물에 발을 넣었을 때는 강과 사람이 모두 변한 상태라는 것이다.

 전통적 교수의 관점에서 정보는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전달된다.

 전달이라는 관점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교사와 학생이 나눌 만한 가치있는 지식이 있음을 가정한다.

 하지만 세상의 지속적이고도 빠른 변화는 교육이 더 이상 지식의 전달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예컨대,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지만,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 먹일 수 있다."는 격언은 오늘날 교육의 목표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는 時代錯誤的이다. 이 격언에는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계속 공급되고, 한 번 배운 낚시법이 평생 유용할 거라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20세기 교수 모형이 실패한 원인이 있다.  오늘날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종류는 물론 낚시법도 지속적으로 바뀐다. 평생학습이 필요한 이유다.

 정보통신 기술은 이제 명실상부한 참여의 매체가 되었다. 참여를 통해 환경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형성된다.

 이런 과정은 거의 본질적으로 양자의 원리와 같다. 정보를 찾는 행동이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 뿐 아니라 의미 자체도 바꾸게 된다.

 매년 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매주, 매일, 매시간 변화에 적응하려고 해야 한다.

 변화는 동기를 부여하고 도전의식을 심어 준다.

 20세기가 변화에 대항하기 위해 안정성을 만들어 내고 천천히 적응하는 데 주력했던 시대라면, 21세기는 변화를 포용하는 시대다.

 변화를 포용한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을 품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일련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미래를 본다는 것이다.

 교육의 기본 방법 중 하나인 암기는 거의 변하지 않는 지식들을 배우는 데는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써먹지 못하는 것들을 암기하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는 어린이 팬들은 해리의 이마에 있는 상처의 의미를 물으면, 굉장히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함께 말해 줄 것이다.

 어린 독자가 그런 정보를 암기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배웠다는 것이다.

 해리포터 현상은 어린이들이 무엇을 배우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 준다.

 해리포터를 학습하는 데 교사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깊고 지속적으로 공부했다.

 놀이와 상상력은 혁신을 일으키는 필수적인 재료이다.

 아마추어 동호회 같은 성인 커뮤니티에서는 혁신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데, 직장은 상대적으로 빈사 직전이다.

 기존의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창조할 자유를 결합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당면 과제다.

 

 4장. 공동체 속에서의 공부
 스터디 그룹처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깊이 있는 대면이라는 자원이 풍부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오늘날 지식은 여과 없이, 즉각적으로 생산,소비,분배될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정보와 관점을 보거나 이용할 수 있다.

 학습 공동체는 일반 공동체와는 매우 다르다.

 일반 공동체는 수동적으로 머물 수 있으나, 학습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

 일반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서 학습한다. 하지만 학습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학습하기 위해 소속된다.

 일반 공동체는 소속감을 만들어 냄으로써 힘을 얻지만, 학습 공동체는 참여를 통해 힘을 얻는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는 먹을 수 있다. 사람에게 낚시를 가르치면 물고기가 계속 잡히는 한 물고기를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학습 공동체를 형성하면 모든 사람은 평생 동안 어떻게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5장. 학습 공동체 속에서의 개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대중을 위한 화법으로 보았고, 철학은 개인적이며 사적인 대화의 주제로 생각했다.

 1999년 파이라 랩스라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작은 회사가 컴퓨터 사용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에 작성하고 이러한 계시물들을 유사한 내용들이 올라오는 다른 웹페이지에 연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페이지들은 웹로그(weblog)로 불렸다. → 나중에는 블로그(blog)라고 줄여졌다.

 이것은 사람들이 웹 상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당시 웹은 공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했지만, 블로그는 시작부터 전적으로 개인적 표현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인터넷 사용자들은 HTML 코드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웹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6장.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답을 안다고 말해왔다. 우리는 그 사람이 명시적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 마이클 폴라니.

 마이클 폴라니가 묘사하는 것은 지식의 암묵적 차원이며, 암묵적 지식은 (성취)경험과 상호작용의 산물로서, 이해되는 지식의 요소이다.

 과거 학습문화에서 교육기관은 명시적 지식에만 집중하고 암묵적 지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알려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과거의 문화에서 지식은 안정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보가 안정적이면 명시적 차원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빛의 속도는 초당 186,282마일이다. 이는 정확한 의사소통 방법으로 가르치는 편이 낫다.

 그러나 21세기는 암묵적 지식의 세계에 속해 있다. 모든 것이 계속 변하는 세상에서 명시적 지식에만 집중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이론이나 도구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암묵적 지식은 개인적 경험과 실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교수 과정으로 전달이 가능하지 않다. ☞ 암묵적 지식은 학습과 성취 경험을 통해 이뤄진다.

 암묵적 지식을 배우는 것은 두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을 통해 신체에서도 학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암묵적 지식은 인지적인 과정인 동시에 경험하는 과정이다. 암묵적 지식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불이 뜨겁기 때문에 만지지 말라고 말하면 아이는 거의 확실히 불에 손을 대고 데일 것이다.

 아이에게 결정을 하기에 필요한 정보의 일부분인 명시적,인지적 부분만 주었기 때문이다.

 즉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지식의 일부만 공유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불에 데였을 때, 아이의 신체는 그렇게 단순한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 온갖 것들을 배우게 된다.

 아프다. 기분이 불쾌하다. 게다가 앞으로 아이는 자신이 데인 성냥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불에 연결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손가락으로 불을 만지는 하나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배운다.

 오늘날 대학에서 공부는 강의실 외에도 심야토론, 스터디그룹, 동아리 등 강의실 밖에서 일어난다.

 학문적 문화에 둘러싸이는 것은 단순히 정보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원들 간의 연결을 만들어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는 점에서 가치있다.

 전통적 학습 모형은 암묵적 지식에는 쓸모가 없다.

 학생이 교사에게 "선생님의 경험을 주세요."라고 요구하거나 "어떻게 혁신을 일으키는지 보여 주세요."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배운다.

 새로운 공부 문화는 관심과 열정이 있는 학생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행동하도록 하는 일련의 조건과 맞닥뜨렸을 대 생겨나는 긴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답을 찾고 사실을 암기하는 행위들은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키우는 데는 별로 소용이 없다.

 심지어 그러한 것은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꺼 버리고 학습을 피곤한 짐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다.

 질문이 대답보다 중요하다. 공부의 열쇠는 기술의 적용이 아니라 발명이다. 학생들이 진짜 자신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모든 대답은 최종점이 아닌 출발점이 된다. 대답은 우리가 더욱 풍부하고 좋은 질문을 하도록 한다.

 이러한 학습 유형을 탐구라 한다. 탐구는 공부를 하기 위한 동기와 공부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제한조건을 제공한다.

 연속된 질문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새로운 질문들을 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탐험하게 한다.

 질문을 하는 것은 지식이 전달되었는지 보여 주는 행동이 아니라, 상상력의 행동이다.

 탐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과정이다.

 암묵적 지식은 지식의 다양한 조각들이 연상,결합되는 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연상을 따라 할 때 명시적 수준에서는 그 이름을 붙이기도, 명확하게 정리될 수도 없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감, 직관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계속 조금 더 좋은 질문을 하는 데 집중하면, 탐구과정에 더욱 깊게 들어갈수록 우리는 암묵적 차원에 의지하고 상상력을 더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질문하는 과정에 더욱 많이 참여할수록 우리는 지식의 암묵적 차원에 더욱 많이 참여하게 된다.

 전통적 학습의 개념은 이러한 열정 및 암묵적 지식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암묵적 지식은 대답을 통해 명시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암묵적 지식은 올바른 질문을 통해 매우 심층적이고 정교한 수준에서 탐구될 수 있다.

 놀이(게임)에서는 점수, 랭킹, 타이틀 그리고 다른 외적인 평가의 다양한 시스템을 통해 서로서로 평가되고 비교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게임을 하는 자들의 궁극적인 보상을 넘어선다. 그들은 향상하고 싶어 한다. 게임의 세상은 실력주의 사회이다.

 게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변화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변화를 창조하고, 그 변화를 통해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즐거움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보상은 새로운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고 현재의 성공과 실패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있다.

 게임하는 사람들의 기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오늘날은 공동체의 無窮無盡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열정과 놀이로 일어나는 자발적인 학습은 이제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혁신하고, 발견하는 방법을 바꾸고 확장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질문을 하도록 해줄 수도 있다.

 

 7장. 앎, 만들기 그리고 놀기
 평생 동안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동물들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할 수 있도록 인류에게 온갖 혁신적인 이점을 주었다.

 그것이 우리의 킬러 앱(Killer Application)이다.

 플라톤이 <Gorgias>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지식 믿음을 구분한다.

 지식은 사실에 관한 것이며 맞거나 틀리거나 하는 것이지만, 믿음은 늘 해석의 여지가 있어 옳고 그름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사실이란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문성의 개념도 재구성된다.

 새로운 정보경제에서 전문성이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주제에 대해 어떻게 발견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성취)행동을 통한 공부 세상에서 무언가를 창조할 수단과 방법을 위한 독특하고 개인적인 통찰을 줄 수 있다.

 앎, 만들기, 놀이라는 배움의 세 가지 차원은 디지털 세상의 구조 속에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사회적 네트워크와 사회적 미디어 사이트에서 무엇을 하는지 한 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8장. 함께 어울리기, 장난삼아 해 보기, 괴짜 같은 행동하기
 괴짜 같은 행동하기는 동료 간 상호작용, 피드백 그리고 강력하고 독립적인 관심을 통해 추구되는 학습을 장려하는 기술적 인프라로 인해 가능해진, 지식 구성의 사회적 맥락이 풍부한 체험적이고도 구체화된 학습의 개념을 제공한다.

 그것은 함께 하기의 사회적 기능과 장난삼아 해 보기의 탐험적 기능이 활용되고 결합되어,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 네트워크 및 인터넷 기반의 공동체를 생산하는 방법을 포함한다.

 괴짜 같이 행동하기의 대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어떻게 하면 심오한 탐사를 위해 사회적,기술적으로 이용 가능한 자원 모두를 활용할 수 있을까?"

 

 9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의 새로운 공부 문화
 암묵적 학습은 자신들의 학습 목표를 발견할 때 가장 효과적인 기능을 한다.

 학생들이 놀이하면서 탐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이 계속 플레이하게 하는지를 발견하게 한다.

 놀이는 전통적인 공부와 지식의 위계를 뒤집는 중심적인 도구이다.

 우리는 질문을 제시하여 정답을 찾는 대신 질문을 통해 더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 필수라고 믿는다.

 우리는 퍼즐이나 게임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생산적 탐구활동에 참여하여 우리가 발견하는 대답이 우리의 정보 비축고의 일부가 되고 그런 정보가 더 좋고 흥미로운 질문을 찾아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무한한 자원과 제한된 환경이 융합되는 순간에 단순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공간이 생겨난다.

 우리가 실험, 놀이, 질문의 효율성을 결과와 해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곳에서 공부가 시작된다.

 

 역자후기

 학습 공동체는 일반적인 오프라인 공동체와는 매우 다르다.

 일반 공동체는 수동적으로 머물 수 있으나 학습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

 일반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서 학습한다. 하지만 학습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학습하기 위해 소속된다.

 일반 공동체는 소속감을 만들어 냄으로써 힘을 얻지만, 학습 공동체는 참여를 통해 힘을 얻는다.

 새로운 공부 문화에서 학습 공동체는 참여의 매개체이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주의력 결핍장애자가 아니라 참여하지 않으면 열 받는 자이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상호소통하고,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소통 없이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너무나도 時代錯誤的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소통을 원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다름을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친구에게 열광하고 인정해준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여전히 성적이 좋은 아이만 인정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소외되고 있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강점 지능을 갖고 태어난다.

 논리적인 사고에 능한 아이들, 음악 지능이 뛰어난 아이들, 자연 친화력이 뛰어난 아이들도 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능력이 제대로 발견되지 못하여 버림받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Posted by robus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