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wall street 로저 로웬스타인 / 제현주 / 2010→2013 / 375p
2008년 금융위기를 원인, 과정, 결과를 해부한다.
로저 로웬스타인.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저서『천재들의 머니케임』『천재들의 실패』『While America Aged』『Origins of the Crash』등.
제현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 디자인경영 석사. 맥킨지. 크레딧스위스. 칼라일. 전문번역가. 역서『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경제학의 배신』『국가의 숨겨진 부』등.
폭풍 전야
이전의 금융은 별 변화가 없는 정적인 산업으로, 미국 경제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위기의 씨앗은 은행업과 시장이 자유화되었던 1970년대에 심어져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월가는 각종 자산을 증권화했다. 금융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새로이 내놓는 데 탐닉하며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학자금대출이나 개인 여신도 증권화되었고, 그중 최고는 모기지였다.
이 시대가 이룩한 번영은 그전만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채에 의존했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18개월 동안 서서히 퍼져 나갔다. 국가경제연구소(NBER)는 불황이 2007년 12월에 시작되었다고 결론지었다.
1장. 갈림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계는 평균적으로 부채를 처분소득의 1/5 수준으로 유지했다. 이제는 가계부채가 가계소득보다 1/3 가량 높아졌다.
모기지 대출에 새로이 뛰어든 기관들은 전통적 의미의 은행이 아니었다. 이들은 예금을 수취하지 않았다.
이런 기관들은 자금원이 부족했기에 패니와 프레디가 자금을 제공했다. 과거에는 패니와 프레디가 증권화 사업을 거의 도맡아 했다.
2000년대 초 월가는 두 기관에 심각한 경쟁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투자은행들도 모기지를 증권화했다.
이제 월가의 투자은행이 게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모기지 대출기관에겐 실질적인 대안이 생겼다.
2004년 처음으로 민간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패니와 프레디 점유율의 합을 넘어섰다.
2장. 서브프라임
영업사원들은 돈을 빌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변동금리인 경우 금리가 높아지면 다른 부채로 갈아타기가 얼마나 쉬운지 설명하며 고객을 부추겼다.
사모펀드는 차입매수에 열을 올렸다. 보통 사람들이 집을 사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빌릴 수 있는 돈이 많아질수록 값은 더 올라갔다. 저렴한 부채는 월가의 수익을 높였고, 집값과 기업인수가격은 높아져 갔다.
CDO는 추가적인 층위를 만들었고 그 결과 궁극적 투자자는 실제 기반이 되는 모기지로부터 멀어져 신용을 따지기가 더 어려워졌다.
복잡하게 얽힌 수법은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금융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원래 목적이 흐려진다.
2005년 신문은 주택시장이 거품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글로 가득했다.
어떤 자산이 오른다고 해서 무조건 거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요와 공급이 변해 값이 오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품이 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연계를 잃은 시장이다. ☞ 투기자산의 경우 그렇다. 투자자산의 경우엔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클 때 거품이 발생한다.
보스턴의 주택은 1990년대 중반에는 소득 중간값의 2.2배의 합리적인 수준에 팔렸다. 10년 후 이 비율은 4.6배로 치솟았다.
3장. 거짓말쟁이 대출의 탄생
모기지 대출기관이 월가로 모기지를 털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모기지 거품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월가가 증권화한 채권이 모기지 물량 증가분의 거의 전체를 차지했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정통파는 은행이 돈을 내다 버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돈이 아니라 투자자의 돈을 까먹는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은 여전히 성립한다.
이성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인센티브가 기름을 붓고 있었다.
앨런 그린스펀은 사람들은 이성적이며, 시장은 수많은 참여자의 이성적 결정의 총합을 반영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2004년 자신의 집을 소유한 미국인의 수는 역사상 최고로 치솟아 69%에 달했다.
4장. 나이아가라 폭포
1970년대 SEC는 월가의 증권 중개인들이 충분한 자본을 갖추게 하고자 투자등급 이하의 채권을 보유하는 것에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SEC는 한 가지 난제에 부딪혔다. 투자등급인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SEC는 공식 지정 평가기관이라는 새로운 항목을 만들기로 했고, 상위 3개사인 S&P, 무디스, 피치가 그 역할을 하도록 했다.
정부가 규제기구로서의 기능을 외주로 넘긴 셈이었다. 채권 발행사가 시장에서 채권을 팔 수 있도록 자격증을 파는 역할이었다.
포드가 전통적인 채권을 발행할 때 투자자가 의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대차대조표에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모기지 증권의 경우, 예컨대 리먼이 1,400건의 모기지를 담보로 하는 채권을 팔려는 경우 위험을 평가하려는 투자자가 있겠는가?
그런데 무디스가 증권에 Aaa 등급을 매기면 투자자는 위험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리먼이 모기지 묶음에 대해 무디스의 등급이 맘에 들지 않으면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고, 다른 평가기관에 다시 맡겼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주식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라거나, 주택시장은 폭락하지 않는다거나, 주택 모기지는 연 1% 정도로 채무불이행이 일어난다는 등의 과거 데이터를 진리의 증거로 여겼다. 월가는 정량적 방식을 채택했다.
투자은행은 리스크 부서를 물리학박사로 채웠다. 문제는 주택보유자들은 분자가 아니며, 금융은 물리학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금융은 과학이 아니었다. 과학처럼 보일 뿐이었다. ☞ 월가는 위험을 정교하게 평가했지만, 정교하게 틀렸다.
그들은 증권을 구성하는 모기지에 수학적 성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실제의 대출절차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높은 신용등급이 독자적인 평가를 대신했다." - 프랭크 파트노이. 법학교수.
5장. 약탈자들
리먼의 사업은 자산을 모아 저장하는 창고업이 아니라 원한다면 언제든 털어 낼 수 있는 수송업이었다. 그래서 안심했다.
신금융이 지닌 장점 하나는 모든 리스크를 장부에서 떼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리스크를 다른 기관으로 넘길 수 있다는 뜻이다.
보험은 리스크를 옮길 뿐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CDS는 월가 기관들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림자 금융시스템에서 지급능력은 금고에 있는 자본이 아니라 제3자와의 계약으로 보장되었다.
계약 당사자들은 다른 계약의 사슬 안에서 모두 연결되었다. 개별 기관의 시각에서는 리스크가 줄었지만 시스템 전체의 취약성은 커지고 있었다.
투기꾼들은 파생상품 덕에 모든 규칙을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부장관 래리 서머스, 앨런 그린스펀, 아서 래빗 등은 파생상품 규제에 대해 적극 불만을 표하며 반대했다.
상업은행은 구조화투자기구(SIV)로 자산을 장부에서 덜어 냈다. SIV는 명목상 독립된 법인체로 거의 모든 자금이 부채로 조달되었다.
SIV의 주된 목적은 리스크가 큰 영업, 그에 연결된 부채를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떼어 내는 것이었다.
은행의 경영방식조차 VaR 모델, 즉 신용등급과 시장가격에 초점을 맞춘 모델로 진화했다.
신중한 심사관은 이 모델이 극단적 상황, 즉 리스크 모델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6장. 숨겨진 가면
씨티그룹은 자기자본 위에 차입을 더 얹고자 리스크가 큰 자산 일부를 대차대조표에서 떼어 내 SIV로 옮겼다.
은행을 인수하는 기관이 차지하는 것은 자금원(예금,부채)과 대출자산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자유로운 대출관행이 뿌리내린 시장에서 은행을 인수한다는 것은 특히 위험하다.
투자은행의 인센티브 시스템에서는 도박을 벌이는 사람이 상을 받았다. ☞ 성과가 아니라 결과를 중시한 결과다.
트레이더의 보너스는 연말에 지급되었지만 지급기준인 수익은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는 트레이드에서 온 것이었다.
트레이더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건 한 번 받은 보너스는 뺏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은행가들은 시스템을 우롱하고, 신용평가기관을 조롱하고, 깡통 모기지를 묶어 Aaa 채권으로 탈바꿈시킨 뒤 선량한 고객에게 떠넘겼다.
사실상 은행들의 이익은 점점 늘어나는 부채비율에 좌우되었다. 투자은행의 부채비율은 자본의 26~34배에 달했다.
7장. 두려움의 부재
벤 버냉키는 온건한 공화당 지지자였다. 그는 자유시장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추종자였다.
8장. 예견된 수순
위기를 맞아 연방예금보험공사 회장 셀리아 베어는 변동금리 모기지에 적용되는 금리를 동결하자고 제안했다.
개별 채무자나 은행 뿐 아니라 모기지 채무자 모두를 도울 수 있는 조치였다.
행크 폴슨은 경악했다. 금리 조정을 막는 것은 은행이 가진 계약권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 은행 구제금융은 경악할 일 아닌가?
폴슨은 구조화투자기구(SIV)들의 몰락에 대한 걱정에 온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이 알맹이 없는 법인체들은 제일 인기 없고 가장 불투명한 자산을 장부에서 떨어 내려고 상업은행이 만든 것이었다.
SIV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거의 모든 자금을 부채로 조달했다. 순전히 차입으로만 이뤄지는 금융실험인 셈이었다.
실제로 SIV의 존재 이유는 차입한도를 제한하는 자본 규제를 피해가려는 것이었다.
SIV가 독립적인 법인체로서 파산하면 보증을 제공한 은행이 그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그럼에도 은행의 주주는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다.
투자자는 집값이나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이게 끝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9장. 루비콘 강을 건너다.
패니와 프레디의 레버리지는 각각 자본의 110배와 170배에 달했다.
버냉키는 베어에 대출을 제공하면서 1932년 개정된 연방준비법의 애매한 조항을 끌어 왔다.
특별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聯準이 은행이 아닌 기관에 돈을 빌려 주는 것을 허가한다는 조항이었다.
聯準은 또한 은행에만 열려 있던 할인창구를 투자은행 및 다른 월가의 기관에도 열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사실 월가 기관들은 그 대상이 자사의 주식이 아닌 한 空買渡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왔다.
그러던 CEO들이 이제는 空買渡를 단속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10장. 비틀거리다.
리먼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관심을 보인 곳은 리먼의 전직 임원 민우성이 총재로 있던 한국산업은행이었다.
11장. 고양이 떼 몰기
12장. 월가의 잠 못 드는 밤
13장. 정화의 불꽃
14장. 여파
리먼에게 총 6,000억 달러를 빌려 준 대출기관들의 신용에 닥친 충격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골드만은 잠재적인 채권단의 일원 정도가 아니라 AIG의 생존에 이해관계가 걸린 직접적인 거래상대방이었다.
티머시 가이트너는 처음부터 자유방임식 접근법에 불편함을 느꼈다.
버냉키 역시 그랬다.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이는 없다."
이제 위기가 확산되자 폴슨은 개입주의를 재빨리 받아들였다. 도덕적 해이는 뒤로 미루었다.
15장. 헤지펀드 전쟁
2008년 9월 17일 수요일 버냉키는 이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그는 폴슨과 함께 의회로 갔다.
소문과 암시가 진짜 실적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는 시장에 직면해 있었다.
16장. TARP(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국제적으로 자유시장이 지나치게 자유로웠던 것이라는 견해로 방향이 이미 급변했다.
한때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제 정부가 필수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상을 따랐다.
유럽은 레이건 시대 이후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신봉되어 오던 밀턴 프리드먼의 신학에서 발을 빼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갈팡질팡하는 처사는 버냉키와 가이트너 모두를 곤혹스럽게 했다.
패니와 프레디의 채권보유자는 보호받았고, 리먼은 그렇지 않았으며, AUG는 다시 보호받았고, 와싱턴뮤추얼은 또 보호받지 못했다.
17장. 몰려드는 폭풍
"미국이 불경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 니얼 퍼거슨. <타임> 2008.10.02.
18장. 자본주의의 거품
"당장 전부 다 팔라." - 짐 크레이머. 2008.10.06.
10월 7일 화요일, 버냉키는 聯準이 어음을 매입하는 장치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聯準이 어음을 매입함으로써 백화점에, 컴퓨터 제조사에, 항공사에 직접 돈을 빌려 주겠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이제 필요하다면 聯準은 미국의 모든 기업을 위한 은행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장은 다시 한 번 폭락했다.
시장의 低點에서 투자자들은 高點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재 추세가 끝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주가를 좌우하는 주기적 흐름이 사라졌다는 태도였다.
은행보증은 자금조달비용을 줄여 주는 것으로 은행에게는 굴러 들어온 횡재였다.
납세자가 주는 선물일 뿐 아니라 보증을 받지 못해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하는 다른 모든 기업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조치였다.
패니와 프레디가 오랫동안 누렸던 정부 보호의 특권적 지위를 은행업계 전체에 부여하는 셈이었다.
자본투입은 이보다 정당한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은행이 살아 남는다면 납세자는 다른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수익을 거둘 것이다.
자본주의자들은 영리하긴 했지만 한 가지 사실, 자본주의에는 자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었다.
부채가 아무리 넘쳐도, 聯準이 유동성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공급한다 해도 자본은 여전히 필요하다.
19장. 월가의 종말
11월 14일 대선 이후 오바마는 무리 없는 정권교체를 위해 가이트너를 뉴욕 聯準 총재에서 재무장관으로 승격시켰다.
이는 어떤 변화든 점진적이어야 한다는 신호였다.
금융회사들과 자동차 회사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실망스런 진실만을 재확인해주었다.
바로 민간시장이 무력하다는 사실이었다. 자신감은 민간 투자자가 용기를 보여야만 제자리를 찾을 터였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투자자가 매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자산가격이 내려가야만 했다.
미국은 10년 치의 기반을 탕진해 버렸다. 그 10년은 미국 최고의 현인들이 번영의 시대가 될 것으로 한결같이 예견했던 시대였다.
20장.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난 몇 십 년간 방대한 리스크관리 및 가격결정시스템이 진화했습니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주요한 진보에 수학자와 금융전문가의 가장 뛰어난 통찰이 결합한 결과였습니다. 파생상품 발전의 상당 부분을 뒷받침한 가격결정모델을 발견한 공로에 노벨상이 수여되었습니다. 이런 현대적 리스크관리 패러다임은 수십 년간 권력을 휘둘러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름, 그 체계 전체가 붕괴했습니다. 리스크관리 모델에 입력된 데이터가 대체로 지난 20년의 행복했던 시기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모델이 과거 시기에 더 적절히 맞춰져 있었다면 금융계는 오늘날 훨씬 나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 앨런 그린스펀.
문제는 모델 자체가 아니라 모델을 활용한 인간이었다며, 변명을 일부 철회했지만 신금융은 실패했다고 발언했다.
"성공은 실패 확률을 무시하게끔 한다." - 하이먼 민스키.
그 주창자의 견해와 달리 20세기 후반 및 21세기 초의 시장시스템은 자연상태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편견과 관례 아래서 진화했다.
신금융의 리스크 개념에 결함이 있었으므로 신금융 자체에도 결함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은행은 미래의 부도율을 모델에 따라 예측했다. 과거의 역사로 미래의 발생확률을 과학적으로 엄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시장은 확률에 따라 움직이는 게임과 다르다.
월가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 그린스펀은 모델을 만든 이들이 과거 역사 중 잘못된 시기의 데이터를 입력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므로 과거 역사 중에서 완벽히 들어맞는 시기를 골라내는 것을 불가능하다.
30배의 레버리지를 쌓아올린 은행을 문제없이 보증해줄 정도로 믿을 만한 역사의 한 부분을 찾을 수는 없다.
파생상품이 리스크를 없앤다는 개념 혹은 파생상품이 리스크를 적절한 기관에 할당한다는 이상론은 그 정체가 처참하리만치 만천하에 드러났다.
개별기관에 돌아가는 리스크가 줄어들었다는 인식 탓에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리스크는 커져 버렸다.
1930년대 뉴딜정책은 기업이 재정상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SEC를 설립해 기업을 감독하도록 함으로써 월가의 많은 해악을 치료했다.
이번에는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은행들은 광범위하게 로비를 펼쳤고 법안이 요구하는 개혁은 모질지 못하고 점진적인 수준에 그쳤다.
위기 이후 시장은 정부가 중요한 은행을 구제해줄 것이라 가정했다. 이는 대형은행은 더 좋은 조건에 자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골드만은 여전히 커다란 리스크를 취했지만 이제 납세자가 그 뒤를 받쳐 주었다.
은행들은 위기 이전의 패니와 프레디 같아졌다. 즉 수익기관이면서 재무부의 구명밧줄을 걸친 것이다.
위기의 여파로 지난 10년의 주식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뿐 아니라 20년 수익률이 정부채권에도 못 미쳤다.
30년 수익률이 겨우 정부채권을 약간 앞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 파국은 엄청났다.
기금이나 연금펀드 등의 기관 뿐 아니라 개인까지 포트폴리오를 새로이 구성했다.
경제적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기본 개념은 뒤집혀 버렸다.
마찬가지로 은행가에게 금융기관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도 부서졌다.
월가의 올바른 목표는 국가산업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거품시대에는 월가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